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오키타 소지 (문단 편집) === 결핵, 그리고 사망 === 오키타는 결핵을 앓고 있었지만 게이오 2년[* 1866년]까지는 심각한 수준이 아니었으며, 다른 신선조 간부들도 그가 가끔 쓰러지는 걸 제외하면 곤란한 점은 없었다고 증언했다. 제 1선에서 활약하지 않게 된 것은 게이오 3년[* 1867년] 이후 부터로, 도바 후시미 전투에는 참가하지 못하고 오사카에 후송된다[* 현재는 도바 후시미 전투를 향해 가던 중 부상을 입어, 오사카로 후송되는 배 안에서 폐결핵 증상이 나타났다는 설이 유력하다]. 도바 후시미 전투에서 패전한 뒤, 대원들과 함께 해로로 에도에 돌아가 갑양진무대에 참가하나[* 여러 가지 설이 있음] 도중에 낙오하게 된다. 그렇게 1867년경부터 [[폐결핵]][* 당시에 폐결핵은 [[불치병]]이었다. 폐결핵은 주로 [[항생제]]를 투여하여 치료하는데 최초의 항생제인 [[페니실린]]이 발견된 것이 수십 년 후인 [[1928년]]이었고 항생제가 대량생산되고 상용화된 것은 더 후대인 [[2차 세계대전]] 이후의 일이었다.][* 그래서 이 시대에 폐결핵에 걸리면 오래 못 살고 죽을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이케다야 사건]]([[1864년]]) 때 피를 토했다는 세간의 설은 근거가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으로 요양하게 되면서 임무에서 빠지게 된다. 그 후 막신(幕臣) 마츠모토 료쥰이 센다가야의 정원사로 숨겨주었다. 여담으로 당시의 유명한 양의였던 마츠모토 료준[* 후일 마츠모토 준으로 이름을 바꾸고 메이지 정부에서도 서양의학의 대가로 요직을 역임했다.]이 우연히 교토에 와서 신센구미 대원들을 전부 진찰하고 남긴 기록에는 폐결핵인 대원이 1명 기록되어 있는데, 그것이 오키타로 추정된다. 센다가야의 정원사로 위장하고 나서 그는 [[오키타 린타로]], [[오키타 미츠]], 그리고 그들의 아이들과 함께 게스트하우스로 이사했다. 막부 군대[* 신센구미와 신초구미 포함]가 도호쿠 지역으로 퇴각했을 때, 오키타는 에도에만 남아 있었다. 게이오 3년 12월 18일 오키타가 요양하기 위해 머물고 있던 콘도의 애첩의 집을 어릉위사·아베 쥬로, 사하라 타로, 우츠미 지로 3명이 습격하였다. 전달 그들의 지도자적 존재였던 이토 카시타로를 살해한 신선조에 대한 복수였으나, 오키타는 후시미봉행소로 떠난 후라 재난을 면했다.[* 여담으로 같은날 저녁무렵 아베 일행들은 니죠 성에서 돌아오던 콘도 이사미를 총격, 부상을 입혔다.] 이후 갑양진무대가 출진할 때 곤도가 오키타를 문병하자, 평소에는 밝던 오키타가 이때만은 목소리를 높여 울었다고 한다. 죽을 때까지 곤도를 걱정하는 말을 여러 번 했었다고 전해진다. 사실 곤도는 그가 죽기 두 달 전인 1868년 5월 이미 죽었으나, 곤도의 죽음에 대해서 주변 사람들은 단단히 입막음을 당했기 때문에[* 안 그래도 환자인 사람이 충격으로 병세가 악화될 수 있으니 차라리 [[모르는 게 약]]이라 여겼을 것이다.] 오키타는 끝내 곤도의 죽음을 알지 못했다고. 그렇게 오키타는 곤도가 참수당하고 2개월 뒤인 1868년 7월 19일[* 음력으로 다섯 번째 달 30일]에 결핵으로 세상을 떠난다. 그날 밤 늦게, 그는 에도 아자부에 있는 센쇼지 사원에 그의 본명으로 묻혔으며 사세구[* 辞世句]는 〈움직이지 않으면 어둠 속에 멀어지는 꽃과 물[* 動かねば闇にへだつや花と水]〉이라고 한다. 묘지는 도쿄도 미나토구 모토아자부 3 센쇼지 외. 센쇼지에 의한 계명은 〈현광원인예명도거사[* 賢光院仁誉明道居士]〉. 또한 오키타 가문의 누대 묘비에는 천연이심류 외 북진일도류의 면허개전을 얻었다는 취지도 적혀 있다. 그의 묘지는 NHK의 타이가 드라마 신센구미가 출시될 때까지 수년 동안 대중에게 공개되었으나 2004년, 드라마 자체 덕분에 신센구미와 오키타에 대한 새로운 관심으로 인해, 많은 방문객들이 그의 무덤을 보기 위해 사원으로 몰려들었고, 그 결과 사원의 묘지는[* 매년 6월의 하루를 제외하고는] 대중에게 제한되었다. 형님처럼 따랐던 곤도 이사미나 히지카타 토시조의 죽음, 그리고 신센구미의 최후를 보지 않았던 것은 행운일지도. 하지만 신센구미의 몰락 자체가 그의 병으로부터 이미 시작되었는지도 모른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